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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우스 안정환을 최고의 선수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 7가지

Aedi_ 2017. 12. 7. 19:28

2012년 축구를 은퇴한 안정환 선수는 축구선수로 활동 했을때 보다 요즘 TV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예능인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요. '안정환'하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골든골을 성공시킨 모습을 머리속에 떠올리실 겁니다.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를 다시쓴 안정환은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최고의 레전드라 부를 수 있는데요. 하지만 우리가 안정환을 최고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데는 더 많은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안정환을 최고의 축구선수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 7가지에 대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배가고파서 시작한 축구

안정환이 축구를 처음 시작한건 배가고파서라고 하는데요. 당시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는 축구를 하면 우유와 빵을 준다는 말에 솔깃하여 축구부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단지 배 부르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축구를 시작하게 된것 입니다. 당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당시 그는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옷도 한벌 밖에 없어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한강에서 벌어진 굿판을 찾아 다니며 남겨진 음식을 먹거나, 동네 배추밭에서 생 배추를 뽑아서 먹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배고픈 유년시절을 보냈던지 그의 초등학교 때 꿈은 '슈퍼마켓 주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한 학기에 10번이 넘게 이사를 다닌적도 있던 그는 수원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버스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을 통학하게 됩니다.

▲ 실제가 아닌 CF의 한 장면


2. 노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안정환

축구부라 학교에 남들보다 일찍 학교에 가야했던 11살 소년은 5시에 일어나서 2시간씩 버스를 타면서 통학을 해야했습니다.그는 당시 제대로 먹지도 못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학교창고에서 몰래 잠을 자면서 축구를 했다고 하죠. 왠만한 어른도 늦은 밤이면 학교에 무서워서 못가는데, 11살의 이 어린 소년은 외로움와 무서움을 이겨내며 축구를 계속해 나갑니다.


이렇게 힘든 환경 속에서도 그는 성실하게 축구를 계속해 나가는데요. 결국 그는 실력으로 인정받아 고등학교 때 청소년 대표로 선발이 되게 됩니다.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면서 그는 이전보다는 좀 나아진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돈벌이를 위해서 주말과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노가다 부터 나이트클럽 웨이터까지 돈이 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합니다.


3. 친구들을 대학진학을 챙긴 의리의 사나이

청소년 대표로 선발 되면서 안정환을 스카웃 하기 위해서 유명대학에서는 많은 러브콜을 보내게 됩니다. 안정환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좋은 대우를 받으며 골라서 갈 수 있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그는 좋은 스카우트 제의를 마다하고 친구들을 함께 받아 주겠다는 아주대로 진로를 결정했습니다.(물론 고등학교 때 감독의 권유도 있었습니다.)

4. 스타의 탄생

아주대에 입학한 그는 친구들과 함께 아주대를 최정상팀으로 이끌게 됩니다. 아주대 재학시절 그는 한국축구의 역사에 길이 남을 진기록을 쓰게 됩니다. 그는 97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대표로 선발되어 외국(시칠리아)에서 경기를 뛰게 됩니다. 얄굳게도 이 일정이 국내 대학추계연맹전과 겹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마치고 귀국 후 공항에서 바로 추계연맹결승전이 진행되고 있는 경기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아주대는 당시 0:2으로 뒤지고 있었는데요. 후반에 투입된 안정환은 45분만에 2골 1도움을 만들어 내며 4:2 역전우승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안정환은 MVP를 차지하게 되는데요. 단 45분 출전으로 MVP가 된 기록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5. 한국 축구의 최고 부흥기를 이끈 안정환

대학교 시절 눈부신 활약을 거둔 그는 프로에 입문해서 빅스타로써 한국 축구의 최고 부흥기를 이끌게 되는데요.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누빈 그는 '테리우스'라는 별명을 얻으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99년 그가 뛰었던 부산대우는 한 시즌 최다 관중인 48만명의 관중을 끌어 모르죠. 그는 관중석이 2.5만개 밖에 되지 않는 경기장에 3만명의 팬을 세경기 연속으로 불러 모으는 진기록을 세우기까지 합니다. 당시 안정환의 트레이트 마크인 '머리띠'를 한 남자들을 축구 경기장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인기 덕분이었죠.


6. 국민영웅이된 2002년 월드컵

실력과 인기 모두를 얻은 안정환은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해외진출을 하게 됩니다. 그는 큰 꿈을 안고 이탈리아 페루자에 입단하게 됩니다. 입단 초기 그는 동양인 선수를 무시하는 기존 선수들의 텃새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요. 그는 결국 실력으로 인정을 받게되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2002년 국민영웅이 된 '안정환'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국민원수'가 되버렸습니다. 그는 그로 인해 구단에서 방출되게 되면서 커리어가 꼬이게 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그는 현지에 있는 집에 갈 수도 없었는데요. 사람들은 그의 자동차를 부쉈으며, 살해협박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구단주 또한 다른 나라로 팀을 바꾸려는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는데요. 구단의 허락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다며, FIFA에 제소, 그는 35억의 배상금을 갚지 않으면 어디로 갈 수 없는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7. 실력으로 빚을 청산한 안정환

35억 이란 배상금을 갚아야 했던 안정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건 우리나라 기업이 아닌 일본 기업이었습니다. 일본기업 PM은 그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조건으로 그의 빚을 모두 갚아줍니다. 일본 요코하마로 팀을 옮긴 그는 3년 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PM에 진 빚을 모두 갚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