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노이만(1903-1957)은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남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헝가리 출신으로 그와 함께 활동했던 과학자들도 모두 노벨상을 받았지만 하나같이 그들은 폰 노이만을 최고의 천재라 불렀습니다. 폰 노이만은 양자역학, 함수 해석학, 집합론, 위상수학, 컴퓨터 공학, 기하학, 수치해석, 경제학, 통계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겼는데요. 그의 동료인 폴 위그너는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 "도대체 왜 헝가리에는 천재들이 이렇게 많나요?"(당시는 헝가리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휩쓸던 시절)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헝가리에 진정한 천재는 단 한명 폰 노이만 뿐입니다!" 라고 하며 그의 천재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대체 폰 노이만은 어떤 업적과 천재성을 보였기에 이렇게 독보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인류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평가받는 폰 노이만의 천재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폰 노이만은 부유한 은행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아 어렸을 때부터 가정교사를 고용 개인교습을 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노이만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수학 등 다양한 학문을 익힐 수 있었고, 7개 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말할 수 있게 됩니다.(물론 가르친다고 다 되는건 아니지만..)
▼어린 노이만이 이렇게 많은 교육을 소화해 낼 수 있었던 건 그의 타고난 두뇌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암기와 수학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는데, 5살 때 암산으로 8자리수 끼리의 나눗셈을 계산했으며 8살에는 미적분을 완벽하게 마스터 했다고 합니다. 또한 한번 듣거나 읽은 내용은 절대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런 노이만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는 파티를 자주 열었는데, 파티에 초대된 수십명의 사람들은 파티가 참석할 때 노이만에게 자신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말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티가 끝나 문밖을 나설 때면 노이만은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정확하게 기억해냈다고 합니다. 이런 그를 위해 아버지는 개인 도서관까지 만들어 줬는데, 노이만은 자신이 좋아하던 세계사 전집 44권을 통째로 외웠버렸습니다.
▼하지만 노이만은 자신이 관심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수십년간 살았던 집 주방에 접시가 어느곳에 있는지는 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노이만은 타고난 재능덕분에 엘리트학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하게 됩니다.(이곳에서 노벨상을 수상했던 동료들을 만남) 당시 그의 담임이었던 라즐로 라스는 그가 초등교육을 받을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눈치채고 당시 유명한 수학자였던 가보르 스제괴를 초빙해 노이만이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가로브 스제괴는 노이만을 처음 만나고 그의 수학적 재능에 감동을 받아 집에 돌아가 눈물까지 흘렸다고 전해집니다.(그의 부인이 증언)
▼노이만의 천재성을 옅볼수 있는 일화는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독특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더욱 암기력과 계산능력이 더욱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가 대학교에 다녔을 때 교수들은 그가 수업에 들어오면 공포심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수업시간에 난제로 남아있던 수학문제들에 대해서 설명하면, 노이만은 5분만에 그 문제를 풀수 있는 방법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 노이만 : 이걸 난제라고 생각한게 난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그의 GE, 스탠다드오일, IBM, CIA 등에 컨설턴트로 활약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 군수 업체는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업무 처리를 위해 컴퓨터를 도입하려고 그에게 컨설팅을 의뢰했습니다. 의뢰를 받은 노이만은 '잠깐만요'라고 말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종이에 몇줄의 계산식을 적어, 군수업체의 고민을 몇초만에 해결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컨설팅비 대신 밥한끼를 대접받았다고 합니다.(그는 이미 엄청난 부를 얻은 상태였기 때문에 돈에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니였습니다.)
▼그는 미국방부에서 진행하고 있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프로젝트도 컨설팅을 했습니다. 당시 ICBM을 개발중이던 과학자들은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않자 노이만에게 컨설팅을 받아보기로 합니다. 그들은 그동안 연구했던 수천페이지 자료를 가지고 노이만 찾아가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설명한 후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몇일이 걸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노이만은 '잠깐만요'라고 대답한 후 단 2시간 만에 그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 노이만은 초창기의 컴퓨터 개발에도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완성된 컴퓨터의 성능을 측정하기 위해 복잡한 계산을 컴퓨터에 입력, 자신의 계산 결과와 비교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단 몇초만에 계산을 끝내고 컴퓨터의 결과를 한참동안 기다렸다고 합니다. --;;;
▼그는 그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근대 과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그는 유체역학에서 인공 점성을 정의했으며, '게임이론과 경제행동'이라는 책도 저술 했습니다. 또한 DNA, RNA의 구조를 예견했고, 컴퓨터 연구에 참여 디지털신호와 이진법에 대한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순서도와 서브루틴, 몬테카를로법을 최초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외에도 다양한 연구과 업적을 남겼지만,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몰라 정리하기도 불가능할 만큼 어렵고 다양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1955년 골수암을 진단받아 2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55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는 생전에 복잡한 현대수학을 몇퍼센트나 이해하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몇분간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28%라고 대답을 했는데요. 만일 그가 20~30년만 더 살았어도 인류는 50%이상 수학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빠른 기술의 발전을 이뤄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말년에 인공지능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기본적인 원칙만 정해주면 스스로 진화하는 프로그램 '오토마타'을 구상했습니다. 그가 오토마타 연구를 완성했다면 구글의 알파고는 이미 수십년 전에 개발되었을 것이고 지금 우리의 삶은 SF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