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심해지는 취업난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미취업자 중 절반은 취업을 위한 각종 시험을 준비중이며, 이중 40%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공무원의 인기는 문재인 정부의 17만 4000명 증원 계획에 힘입어 더욱 높아지고 있는데요. 점차 공무원 정원 늘어난다고 하지만 그래도 공시를 통과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문듯 호기심이 생기는데요. 과연 현재 공시와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중 어떤것이 더 어려울까?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재미로 알아보는 공시 VS 과거시험 비교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과거(科擧)란 시험 과목에 따라 인재를 선발하여 거용한다는 뜻인데요.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은 매년마다 개최된 것이 아니고 3년에 1번 개최가 됐다고 합니다. 게다가 선발인원은 33명 밖에 안됐다고 하는데요. 500년간 급제자가 겨우 1.5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가히 그 경쟁률이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훨씬 더 치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20여년을 공부해야만 급제가 가능했고 생원진사는 평균연령 34~5세 문과는 37~8세가 되었다고 하니 요즘으로 치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10년 이상 직업없이 공부를 해야만 취업을 할 수 있었던 셈인데요. 그렇게 때문에 생업을 위해 학업과 생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과거에 급제하기가 어려운탓에 나라에서는 임시시험제도를 도입하게 되는데요. 1401년 태종 때는 나라의 큰경사가 있을 때 실시한 증광시(增廣試), 57년 세조 때의 별시(別試), 그리고 29년 세종 때 국왕이 성균관에서 시험하는 알성문과(謁聖文科) 등이 생겨나게 됩니다.
▼특히 국왕이 직접 참석하는 시험의 경우에는 보통 수개월이 걸렸던 급제자 발표가 바로 당일 즉석발표가 되어서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이런 인기에 1만명 넘는 인파가 몰려 압사사고도 빈번하게 발생됐다고 합니다. 따라서 과거를 지방에서도 열어 달라는 민원이 쇄도 했다고 합니다.
▼이쯤에서 궁금해 지는게 과거시험문제 인데요. 조선시대의 경우 과거는 모두 논술문제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출제된 문제를 보면
술의 폐해를 논하라.
나라를 망치지 않으려면,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올바른 신하를 얻기위한 방법은?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
논밭에서 거둬들일 세금 책정의 기준은?
등 정말 많은 지식과 나라운영에 대하 고민을 하지 않으면 답을 쓸 수 없는 수준의 문제들이 출제가 되었는데요.
▼그렇게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컨닝은 존재했다고합니다. 속옷에 작은글씨로 빽빽하게 컨닝페이퍼를 만드는 전통도 이때 만들어 진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당시에는 본인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도 부실했기 때문에 대리시험을 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고 종국에는 시험관을 폭행하는 사건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상 조선시대 과거제도에 대해서 알려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