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주병진의 놀라운 면모
주병진은 슬랩스틱 코미디 위주였던 우리나라에 영국식 스탠딩코미디를 도입해 개그맨으로는 처음으로 톱MC가 된 인물입니다. 그는 센스있고 재치넘치는 입담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이었던 '젊음의 행진', '일요일 일요일 밤에', '두시의 데이트'의 MC를 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추문에 휩싸여 순탄치만은 않은 연예계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개그계의 신사, 토크의 황제(또는 꽃뱀사건 피해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주병진씨는 코미디언으로써의 능력보다 사업가로써의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개그맨 주병진의 잘 알려지지않은 놀라운 사업 능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돈을 벌었던 것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신문절대사절'이란 집에도 신문을 넣는 조건으로 일을 넘겨받았습니다. 신문을 사절하는 집은 자신의 돈으로 신문을 사서 넣어줘야하는 조건이었죠. 그는 '신문사절'이라고 씌여 있지만, 매번 신문을 넣어주면 집안으로 가져가서 공짜로 신문을 읽는 집주인 때문에 자신이 계속 손해를 봐야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한가지 꾀를 내게 됩니다.
▼그는 몇일동안 일부러 신문을 넣지않고 집주인에게 신문을 계속 받아보셨으니 돈을 낼것을 요구했습니다. 집주인은 "무슨 소리야! 신문이 몇일 동안 온적이 없는데!"라고 화를 냈다고 하죠. 이에 주병진은 "앞으로 다 넣어 드릴테니까 반값에 보실래요?"라고 딜을 해서 손해를 반으로 줄이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일부러 넣지 않았던 신문들은 어차피 버릴 거 정육점에 저렴하게 넘겨서 손해를 최소화 했다고 하죠.
▼어려서부터 장사꾼 마인드가 남달랐던 그는 성인이 되어서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게 됩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우연히 찾아간 방배동 해장국집에서 이곳에서 장사를 하면 잘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가게를 계약 '제임스딘'이라는 카페를 차리게 됩니다. 20대 초반이라 모아놓은 돈이 없었던 그는 계약금을 주변 지인들에게 빌려서 충당했습니다.
▼이후 잔금과 인테리어 비용, 심지어 고사를 지낼 비용까지 사람들에게 빌리거나 외상으로 처리 어렵게 가게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게를 오픈도 하기전에 그는 사람들로부터 빚독촉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후 가게까지 찾아와 빨리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카페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얻게되고, 인기에 힘입어 24시간 영업을하게되면서 6개월만에 모든 빚을 청산했다고 합니다.
▼그가 카페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건 상권이 좋은 곳을 고를 수 있는 안목과 더불어 그만의 차별화 전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카페 간판을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간판보다 5~6배는 크며 모양도 카우보이 모자 형태로 독특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간판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동네의 랜드마크가 됐다고 합니다. 길을 설명하거나 택시를 탈때 사람들은 '제임스딘'을 기준으로 위치를 설명하게 된 것입니다. 이 카페가 문들 닫은지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동네사람들은 '제임스딘'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카페로 큰 돈을 벌게된 그는 더욱 큰 사업에 도전하게 됩니다. 새 사업거리를 찾던 그는 당시 3개 회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속옷업계에서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이후 그는 속옷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자재회사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대줄 사장님들을 찾아나섭니다. 당시 코미디언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던 그가 갑자기 자재회사에 찾아오자 사장님들은 하나 같이 "하하하 주병진씨네, 에이! 하지마!"라며 모두 그를 말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기존 업체들의 시장지위가 너무나 탄탄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만의 차별화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해 나갑니다. 그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닫고 광폭밴드형 디자인을 채택한 팬티를 출시합니다. 그리고 패션 속옷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습니다.
▼그는 개그맨 답게 창의적인 광고로 회사를 홍보하기도 합니다. 그는 매일 한줄짜리 광고를 신문에 싣어, 사람들이 굳이 찾아서 봐야하는 광고를 냅니다. 월리를 찾아라와 같은 게임적 요소가 가미된 신문광고였죠. 그리고 그의 개그센스가 담긴 광고를 지하철에 내보내기도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광고를 읽기 위해 광고앞으로 몰려들었으며, 다음 광고를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본인의 누드 광고로 온 국민들의 관심과 걱정을 한몸에 받기도 합니다. 그는 1995년 2월 정장을 입은 모습으로 신문광고에 출연 다음광고부터 차례로 옷을 하나씩 벗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2월 21일자 신문광고에 속옷차림으로 등장해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으며, 다음 광고에서는 속옷까지 모두 벗겠다고 협박(?)을 하죠.
▼당시 보수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이 광고는 많은 파장을 불어왔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본사로 항의전화까지 했다고 하죠. 그리고 그가 약속한 24일 정말 그는 본인의 누드사진을 신문 전면광고로 싣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진은 현재 그의 모습이 아닌 돌때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또한번 사람들에게 많은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찌됐건 이 광고는 가장 성공한 티저 광고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참신한 방법으로 속옷업계에 진입한 주병진씨는 순식간에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며 좋은 실적을 내게됩니다. 이후 그는 좋은사람들을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큰 돈을 벌게 됩니다. 그리고 2008년 경영권과 주식을 처분, 지금은 가끔씩 방송에 출연하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